[대만/일본] 두번째 우육면과 유유자적 돌아다니는 밤거리

숙소에 돌아와서 책과 짐을 적당히 정리한 후...
지난번에 먹었던 우육면이 워낙 인상 깊었던 것도 있고,
이번엔 숙소 바로 앞에 있는 다른 우육면집을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가격은 홍백 상관없이 단 돈 200원.
번화가인 시먼딩 + 깔끔한 인테리어를 생각하면 가격이 이렇게 싸도 되나 싶은데...
다만 반찬은 따로 돈을 받는 듯?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몰라서 가져오진 않았지만... 여러 야채 요리나 피단도 있더군요.
다음에 대만 올 때는 확실히 중국어 가능한 지인을 데려오던가, 중국어를 직접 공부하던가 해야지 원...
그래도 사진 있는 메뉴판의 도움으로 큰 어려움 없이 주문한 빨간 우육면.
미리 재료 준비는 다 되어있는지 5분도 안 되어서 나왔습니다.
전에 갔던 가게랑 비교하면 일단 고기는 같은 종류 하나이고...
식감은 마찬가지로 부드러운 편이지만, 아주 사알짝 질긴 느낌입니다.
그래도 가격 생각하면 이렇게 큼직큼직한 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감사할 따름.
그리고 면도 식감 괜찮고, 겉보기와 달리 전혀 맵지 않아 먹기도 좋습니다만...

아무래도 홍탕과 백탕의 차이는 향신료의 유무였는지, 그 뭐냐,
대만 특유의... 요상야릇한 한약향이 우육면 전체에 아주 진하게 배어있습니다(...)
덕분에 깔끔한 고급 갈비탕 느낌과 달리 이국적이고 특색있는 색다른 느낌이긴 하지만,
음, 국물 완식은 무리였네요...
그렇게 우육면을 다 먹고 숙소로 흐물흐물 돌아가던 중,
근처 가게에서 과일을 팔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냥 밤에 스쳐가서 몰랐는데,
과일 하나를 손질하고 깔끔하게 플라스틱 팩에 넣고 팔고 있더군요.

가격도 100원 언저리로 적당하고... 바로 옆에 원본 과일이 있으니 시각적 효과도 있고,
즉석에서 과일 음료수까지 만들어주는 걸 보니 규모는 작아도 있을 건 다 있고,
오히려 깔끔한 인테리어의 프렌차이즈보다 훨씬 호감이 갔습니다.

한국에선 먹기 힘든 열대과일에 대한 호기심도 한 몫 했고요.
용과나 파인애플은 한국에서도 먹어 봤고, 석과는 일단 이름은 들어봤으니 넘어가는데...
그 사이에 있는 처음 보는 형태의 과일이 있어서 이걸로 골랐습니다.
생긴 건 무슨 헬 헤임 열매처럼 생겼는데, 주인 아저씨는 당연히 영어를 못해서(...)
숙소 직원에게 물어보니 구글 화면을 보여주시며 wax apple이라고 하시더군요.

사과 변종인가?
일단 짭짤한 음식을 먹고 텁텁한 입을 정리하기에 과일만큼 좋은 것이 또 없으니 일단 먹어보기로 했는데...

음...

으음....
... 왜 과일에서 스티로품 맛이 나지(...)
사진을 보시면 알겠지만 과일 속살이 우레탄 마냥 결이 가있는데, 식감이 딱 그대로입니다.
한 입 물면 처음에만 사과 비슷한 단 맛이 나고 그뒤로는 음... 무슨 종이 씹는 거 같다고 해야 하나...
덤으로 겉 부분은 파프리카 맛(...)
과일은 과일이고, 수분도 많은데 단 맛은 거의 없는 괴상한 과일이었습니다.

용과도 그렇고, 어째 열대 과일을 먹을 때마다 단 걸 먹은 적이 없는 느낌이...
이건 과일이랑 같이 먹으려고 산 과자와 콜라인데, 얘네도 좀 이상한 건 매한가지.
감자칩은 일단 압도적으로 오감자 맛이고, 콜라는 펩시 맛(...)

어째 돌아다녀서 고른 것들이 다 꽝이네요.
결국 식사를 시작했으면 뭐 하나 맛있는 걸로 마무리는 해야겠다는 생각에 바로 숙소 밖으로 나왔습니다.
겨울이어서 그런지 해가 벌써 졌네요.
그렇게 터덜터덜 1분도 안 되어 비와 인파로 가득찬 시먼딩에 도착하기는 했는데...
확실히 낮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활기차긴 하네요. 
처음엔 타이완 넘버1이라 적힌 1973 치킨집을 갈까 했지만,
줄이 너무 길고 사람도 안 줄어들어서 포기하고...
일본에서도 안 간 메이드 카페(?)야 당연히 패스하고
음... 음...
역시 나오긴 했는데 정작 어딜 가야 할 지는 모르겠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조사 좀 열심히 해오는 건데...
결국 이 골목 저 골목 그냥 발길 가는데로 마구 돌아다니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일행도 일정도 없는 혼자니까요.
이렇게 유유자적히 밤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뭐 하나 재밌는 거라도 하나 찾을 수 있겠죠.
그렇게 걷다보니 간판에 프라이드 치킨이 적힌 음료수 가게도 만나고
4년 전에 들렸던 버블티 가게도 지나가고
단체여행의 폐해로 단 30분만 볼 수 있었던 시먼딩의 밤을 이렇게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니,
이건 이것대로 나쁘지 않네요.
이 가게는 전에 왔을 때는 대체 뭐하는 곳인가 했는데,
이제 보니 굴요리 전문점이었네요.
한 번 들려볼까 생각했지만,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사람이 너무 많아 결국 포기...
그러고보니 맞은편에는 그 유명한 삼형제 빙수가 있었죠.
전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랑 같이 왔었는데, 지금은 혼자란 사실이 묘하게 실감 난다고 해야 하나...

뭐, 여기도 일단 겨울철이기도 하고 전에 먹어봤으니 일단 패스.
그렇게 추억에 잠기며 길을 걷던 중...
정말 오랜만에 대만에서 한글로 적힌 간판을 발견하고 발걸음을 멈춰섰습니다.

... 진짜 한국인 관광객이 증가했다는게 허튼 소리만은 아니구나 싶으면서도,
생각해보면 일정이 마구마구 꼬여서 원래 가려던 야시장을 한 번도 못 갔다는 사실일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한 번 보니 치즈감자도 여기서 팔고 있더군요.
살짝 고민했지만, 개인적으로 치즈 별로 안 좋아하기도 하고, 이미 유명한 장소니 옆으로 넘어가니
이번엔 떡볶이 집이 등장했습니다.
일본에서도 한식하면 떡볶이, 순두부 찌개, 양념치킨, 치즈 닭갈비 등이 인기였던 걸 생각하면
역시 외국인들은 이런 음식이 취향인가 보네요.
현지에서 이런 모습을 보다가, tv에 나오는 자칭 맛 칼럼니스트나 높으신 분들이 하는 말을 보면...
음... 참 미묘한 느낌이에요. 정말 한국 문화를 발전시키고 세계에 알리고 싶긴 한 걸까요?
역시 그닥 배우지 못한 저는 잘 모르겠어요.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한참 가게들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소세지에 소세지를 끼워 파는(?) 신기한 가게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이런 고기고기한 아이디어를 내다니, 사장님 굉장해요.
메뉴는 심플하게 소세지 구이(아마 샹창?)와 메인 메뉴로 추정되는 소세지소세지 핫도그(가칭)
으아... 냄새 완전 죽여요...
마침 딱 제 차례가 되서 바로 주문했습니다.
메뉴가 사실상 하나이기도 하지만, 사장님이 영어가 가능한 덕에 주문도 수월하게 완료!
미리 익힌 소시지를 가열하고...
서브웨이처럼 안에 들어갈 야채를 고를 수도 있었습니다.
이때 그냥 'all'이라고 했는데... 사장님이 정말? 마늘도 포함해서? 라고 물으시더군요.
고수가 아니라 왜 마늘을 물어보시는 거지...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냥 괜찮다고 하고 다 넣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말 끝나자마자 무서운 속도로 토핑을 올리는 사장님.
이때 보니까 핫도그 조립하는 전용 용기까지 있더군요. 진짜 한 1분도 안 되어서 음식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이번엔 제대로 된 음식을 골랐다고 확신하며 빗 속을 총총 걸으며 숙소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나저나 저 가게는 묘하게 사람이 많네요. 요새 과일 음료가 인기인가?
돌아가는 길에 이 치킨도 한 번 살까 했지만 여전히 사람이 많아서, 아니 더 늘어나서(...)
그냥 다음에 들르기로 하고 그대로 지나쳤습니다.

역시 치킨은 어디서나 인기인가 봐요.
그나저나 생각해보면 오늘 한 일이 진짜 없긴 한데...
이렇게 잉여롭게 하루를 보내는 게 얼마만인지 몰라서 그런가 나름 후련했습니다.

제가 무슨 여행작가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그냥 마음 편히 쉬면 그만이니까요.
...라고 생각한 찰나에 갑자기 야릇한 광고가 대놓고 찍힌 트럭이 지나가서 순간 뿜(...)을 뻔 했습니다.
일본만큼은 아니어도 여기도 꽤나 개방적인 건...
가...
... 방금 뭐였지(...)
이렇게 보니 확실히 외국은 외국이네요... 그러고보니 어디 사는 누가 그랬었죠,
그 나라의 과거를 보고 싶으면 박물관에 가고, 미래를 보고 싶으면 도서관에,
그리고 현재를 보고 싶으면 시장에 가라고요.

한자가 빼곡히 적힌 형형색색의 간판들과 일렬로 늘어선 오토바이.
누릿한 향신료 향기와 발 마사지 가게들.
어떻게 보면 이제 슬슬 외국에 왔다는 실감이 드는 것도 같아요.

음... 그나저나 이렇게 그냥 돌아가는 건 좀 심심한데...
그래서 마침 숙소 옆에 있는 편의점에 들렸습니다.
진짜 이번 숙소는 완전 잘 잡았다니까요. 식당, 편의점, 역 등등등...
바로 옆에 아주 그냥 없는 게 없어요.
처음엔 김치나 살까 했지만 역시 이건 좀 아닌가 같아서 넘어가고...
냉동식품 왜 이렇게 싸??
한화로 2천원도 안하는 거 보고 일단 호기심에 하나 초이스!
일렬로 늘어선 각종 우유와 도시락들.
이렇게 보니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일본보다 더 깔끔한 거 같기도 하네요.
종류도 그렇지만 뭔가 신기한게 되게 많아요.
특히 이 봉지(?)도 그렇고요.
처음엔 직원이 왠 수박 봉투를 꺼내길래 뭔가 뭔가 했는데, 담아주는 거 보고 엄청 놀랐습니다.

무슨 장점이 있는지는 몰라도, 신기하기는 엄청 신기하더라고요.
어쨌든 오늘 일정을 마무리할 편의점 메뉴는 바로 작장면과 치킨!
예전에 츠루하시 시장에서 짜장면 못 먹어본 것도 있고,
말로만 들었던 짜장면의 원형을 한 번 체험해보고 싶어서 샀습니다.
4년 전에 샀던 엄청 밍밍한 딸기우유는 덤이고요.
그리고 야시장에서 산 소세지소세지 핫도그(가칭)까지!
그럼 일단 제일 기대되는 이녀석부터...

전체적인 모습은 소세지에 소세지가 껴있고,
그 안에 각종 토핑이 수북하게 쌓여있는 아주아주 만족스러운 모습인데...

과연 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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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이상으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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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어어어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한 입 베엄웅룬움 우ㅡ으...

으으... 그러니까 베어물 때만 해도 괘찮았어요...
일단 저 하얀 소시지는 고기가 아니라 찹쌀 소세지였는데 식감도 괜찮고,
 고기 간도 좋고, 향도 적당히 기름기를 잡아줘서 좋았는데...

마늘... 마늘이...

듬뿍 올라간 생마늘의 그 알싸한 매움이 순간 입 안 + 코에서 뻥하고 터져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왜 사장님이 마늘을 두 번이나 물었는지 이제 좀 알 거 같아요...

진짜 마늘만 조금 덜 들어갔으면 최고였을텐데, 이게 다 사전조사 대충한 제 업보려나요...
에고고... 그럼 이제 남은 작장면을 한 번 먹어봐야죠.
일단 겉모습이나 향은 상당히 그럴싸합니다.
살짝 자작한 간짜장 느낌인데, 고기도 왕창 들어서 보기에는 꽤 좋아요.
그럼 어디 이제 슥슥 비벼서,
한 입 크게 먹으면...

...


...


...

??????????
이건... 이건 그러니까... 그냥 된장 비빔면인데요(...)

뭐, 짜장면의 원형이라고 해서 꼭 같은 맛이 나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그냥 이름만 비슷한 다른 음식, 그것도 아주 그냥 생판 다른 음식입니다.

향은 분명 짜장면인데, 맛은 단 맛도, 감칠맛도 일절 없이 그냥 짠 맛이 끝.
덤으로 되게 뻑뻑합니다...

결국 결과적으로는 둘 다 꽝이었네요, 그런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남은 면을 들어 올린 순간.

갑자기 고개가 휘청 흔들렸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시야가 흔들려서...

아니아니, 나 술 안 마셨는데? 정확히 말하면 못 마시는데? 짜장... 작장면에 약이라도 들어갔나?
그런 생각을 해봤지만, 그와중에도 계속 주변이 흔들흔들흔들흔들흔들거렸습니다.

분명 난 가만히 앉아서 면을 젓가락으로 잡고 있는데,
주변 공기가 뭔가 흔들... 아니, 일그러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냥 너무 많이 걷고 먹어서 드는 착각이라고 계속 스스로에게 반문해도 그 순간에도 사방이 흔들거리니...

이건 뭔가 아닌가 싶어 젓가락 든 채로 황급히 밖으로 나왔습니다.

왜 있잖아요. 가끔 차에 치일 뻔할 때, 혹은 선생님한테 혼날 때 드는 그런 이상한, 속 울렁거리는 감각...
뭐... 그렇게 황급히 나왔는데.

정작 밖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우산쓰고 아무일 없다는 듯이 돌아다니고 있었지만요(...)

... 솔직히 무지무지 창피했어요.

하긴, 발에 맞지도 않는 신발 신고 그렇게 꽝만 골라 먹었으니 헷갈릴만도 하지, 실제로 아무 일도 없었고...
그렇게 생각하며 돌아와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켰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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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게 지진이었구나.

그 생각이 들자마자 바로 이불을 뒤집어 쓰고 그대로 눈을 감았습니다.

건물이 미세하게 흔들흔들흔들거렸지만.
침대가 삐걱삐걱 흔들렸지만.

자고 일어나면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다시 눈을 떠도 바뀐 건 없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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